Piece 63: Chi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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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er: Mario Bellini (b.1935)

Manufacturer: Flos

Year: 1969 / 2019





수십 년의 시간을 투자한 복잡하고 섬세한 구조물이 주는 감동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이우환 작가의 작품처럼 거대한 평면 위 점 하나가 주는 묵직한 존재감이 있다. 오늘 소개할 조명은 후자에 가깝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건축가 마리오 벨리니 Mario Bellini가 디자인한 치아라 Chiara 램프는 매우 단순한 구조로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스틸 마감과 함께 묵직한 덩어리감으로 공간 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처음 이 플로어 조명의 이미지를 접했을 때, 큼직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굉장히 가벼울 것만 같아 보였다. 마치 종이를 접어 오려 붙인 듯한 형태 때문인 듯했다. 사각형의 종이를 말아 만든 휴지심 같은 몸통 위에, 원뿔처럼 말아 올린 삿갓 모양의 모자가 연결된 모습은 흡사 집에 있는 세 살배기 아들의 색종이 공작을 떠올리게 했다. 만약 구매를 한다면, 펼쳐진 상태로 받아 가볍게 말아 붙여 세울 것만 같았다. 

마리오 벨리니가 처음 Chiara 램프의 디자인을 고안해 낼 때는 실제로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넓은 판지를 가위로 컷아웃 하여 만든 것이 첫 목업이었다. 직접 제작사와 미팅을 잡고 찾아가 시제품을 보여주었고, 그렇게 탄생한 오리지널 Chiara 램프는 커다란 스틸 시트를 잘라 원통형으로 감싸는 제작 방식을 통해 만들어졌다. 종이처럼 가볍게 보이지만, 사실은 묵직하고 견고하게 형태가 고정된 스틸 조명이었다. 45도로 기울어진 위쪽의 모자 형태 부분도 단단히 붙어 마감되어, 상상처럼 사용자의 개입으로 직접 휘거나 말아서 붙일 수 있는 부분은 아쉽게도 없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명이 주는 매력이 줄어들지는 않지만). 스틸 시트의 날카로운 가장자리 부분은 검정 띠로 마감되어 조명의 형태를 분명히 하고 세련미를 더했다.  

마리오 벨리니는 단순히 빛을 내는 조명이 아니라 광원에서 나오는 빛을 지능적인 방법으로 우아하게 주변 환경으로 발산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고자 했다. 그는 베이스인 원통 속에서 반사되어 올라오는 빛이 상층부 갓의 흰 안쪽 면으로 부드럽게 퍼져 나오게 설계했다. ‘Chiara’라는 이름의 의미는 이탈리아어로 ‘맑은, 투명한’, 즉 ‘클리어 clear’의 의미를 가진다. 이 단어가 문맥 상에서 종종 ‘let’s be clear’처럼 ‘명확히 하자, 오해를 풀자’와 같은 의미로 자주 사용되듯, 치아라 램프는 어둠을 부드럽게 걷어내며 공간을 명료하게 드러나게 한다. 이것은 물리적인 ‘밝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롬바르디아 방언에서 ‘chiaro’가 ‘to shed light(빛을 비춰 명확히 하다)’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처럼, 한 걸음 나아가 공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 혹은 인식을 제공하고자 한 것으로도 여겨진다. ‘Chiara’는 벨리니 딸의 이름이기도 하니, 이름이 가진 의미 또한 꽤나 깊고 흥미로운 조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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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조명 회사 플로스 Flos는 출시 50주년을 맞아 Chiara 램프를 다양한 마감과 크기로 재출시하게 되었다. 오리지널 Chiara 램프는 스틸 시트 만나는 부분의 장식(에지 프로파일)이 잘 떨어져 나가고 날카로워 위험했는데, 이를 보완해 재 출시된 램프는 장식 부분을 완전히 고정시켜 안정성을 높였다. 또한 기존 클래식 플로어 램프 사이즈에 작은 사이즈의 테이블 램프를 추가하고, 색깔 옵션 또한 더해져 공간 속에서 보다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Chiara 램프는 겉으로 보이는 형태는 간결할지라도, 디자이너의 심오한 의도와 빛에 대한 깊은 이해가 응축된 결과물이다. 화려하면서도 모던한 스틸 시트 마감과 은은하게 확산되는 빛의 조화, 그리고 이름에 담긴 메시지까지. Chiara 램프는 단순한 조명을 넘어 공간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오브제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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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designer

이탈리아의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경제적, 문화적 또 디자인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룬 이탈리아의 경제 호황, 일명 "일 붐(Il Boom)"이라 불리던 시절 Politecnico di Milano에서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산업 디자이너로 디자인 업계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 그가 디자인에 참여한 ‘Programma 101’은 프로그래밍 가능한 최초의 상용 계산기로, 글로벌한 성공을 거두며 이탈리아 경제 황금기에 일조했다. 이후 건축가보단 제품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며 B&B, Cassina, Flos 등 유럽의 내로라하는 가구, 조명회사 협업하며 커리어를 쌓았다. 그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8번의 황금 콤파스 상(Compasso d'Oro)을 안겨주었고, 뉴욕 MoMA의 영구 컬렉션에 소장될 정도로 높게 평가되고 있다. 80년대부터는 건축에 집중하기 시작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Louvre Museum의 이슬람 예술관 Museum of Islamic Art 등 수많은 건축 프로젝트를 디자인했다. 또한 1985년부터 1991년은 건축, 디자인 매거진 도무스 Domus의 에디터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91년에 영국의 RSA(Royal Society of Arts)로부터 왕실 명예 디자이너 HonRDI(Honorary Royal Designers for Industry)로 임명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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